쿠바 - 하바나
2015-01-06
쿠바의 하바나 관광 역시 짧기는 마찬가지이다. 공산권 국가라서 좀처럼 여행 상품에 끼기 어려운 코스다. 우린 요행히 쿠바를 거쳐 멕시코로 갈 수 있도록 일정이 짜여 있어서, 잠시 베일에 싸인 쿠바에 입성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비행기로 소요 시간만 무려 10시간 정도. 중간에 환승하고 또 환승하여 오후에 하바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였다. 피곤한 여정이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좋은 쿠바 현지 가이드 덕분에 시작부터 유쾌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미국과 쿠바가 외교 협상을 하였지만, 우리가 갈 당시에는 아직 준비 단계에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공산권의 다소 엄격하고 냉랭한 분위기보다는 자유국가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져 좋았다. 쿠바 국민들 역시 미국과의 교류를 만장일치로 환영하고 있다고 하니, 현대생활에서 필요한 자본과 자유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쿠바인이면서 한국에서 유학을 했다는 현지 가이드.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샘이든가? 한국말도 썩 잘해서 일행들과 의사소통을 바로 할 수 있었고, 거기다 뛰어난 유머 감각까지 우리를 온통 매료시키는 매력 만점의 훈남 아저씨가 안내한 식당도 역시 조용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점심 시간이라 실내가 아닌 가든에 식탁을 차려놓고, 식욕을 돋구는 시원한 음료 한잔으로 시작하여 맛있는 식사를 했는데, 여기에 금상첨화, 쿠바의 젊은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민속 음악 연주 및 합창, 댄스 공연까지 정말 모처럼 망중한의 한때를 보냈다. 일행들은 일제히 호주머니를 뒤져서 우리를 위한 멋진 공연을 선사한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선물을 전달하기 바빴고, 기념촬영하느라 여기저기 다니며 분주하였다.
하바나 시가지 투어는 혁명광장, 존엄광장, 말레콘 산책로, 호세마르티 기념관 관람등으로 이어졌다. 혁명 이전에 국회의사당이었던 카피톨리오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호세마르티 기념관 외벽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과 함께 그의 어록이 걸려 있다. 광장에 들어서면 딱 눈에 들어올 수 있는 높다란 위치에 마치 실루엣 처리한 흑백사진처럼 체 게바라의 모습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민족과 국가의 정신적 지도자, 권력에의 의지가 아닌 진심으로 자유 투사의 길을 걸어간 한 사람, 그의 정신은 비단 쿠바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의지를 심어주는 지주이기도 하다.
저녁 식사는 유명한 <노인과 바다>의 저자인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묵었다는 호텔인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 이층에 마련된 전망좋은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즐겁게 했다. 공기도 좋고 해가 지는 바깥 풍경이 고스란히 내다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기분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음식 맛도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식사를 하는 다른 현지인들의 관심과 배려를 느끼면서 이방인으로서의 거리감이 전혀 없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던 같다. 헤밍웨이는 참 운이 좋은 사람같다. 아메리카와 유럽 등지의 아름다운 곳만 찾아 다니며 원하는 만큼 살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았으니 말이다. 물론 작가로서의 고통이야 있었겠지만.
저녁 식사 후에는 포격식 관람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드는 일종의 군대식 의장 퍼포먼스였는데, 야간에 성곽 유적지에서 엄숙하게 행해지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도 있고 또한 이국적인 낭만같은 것도 느껴졌다. 양쪽에 성벽으로 둘러 싸인 포격장 진입로에는 기념품과 자신들이 만든 민속공예품을 파는 상인들과 그의 가족들이 역시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에서는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초조하고 급한 표정이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들 또한 이국의 이방인들과 함께 오늘 이 시간을 즐기러 나온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그냥 저녁 식사후 가벼운 산책을 함께 나온 기분이 들만큼 친근하고 정겨웠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어서 값싼 동정심이 인 건 아니다. 물질은 정말 별 것 아니고,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으며, 오히려 더욱 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이다. 수많은 잘 사는 나라들을 둘러 본 바, 물질과 정신이 빚어내는 문화의 차이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익히 아는 터라, 상대적 빈곤국가를 방문할 때면 더욱 더 이런 자책과 함께 일면 부러움도 감추지 못하는 것이 나의 진심이다. 절대적 궁핍은 사람을 핍박하게 만들고 때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들 물질에 연연하고 가능한 한 부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고 사경제가 전무한 공산국가라서 그런지 그러한 열망은 아예 포기하고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기념품과 가정에서 만든 수공예품의 행상은 사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공산국가라도 쿠바는 다르다는 것 : 즉 자유 의지와 인권 보호 측면에서는 서방의 어느 자유민주주의국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모두 쿠바의 혁명지도자이자 쿠바 국민의 우상인 '체 게바라'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들이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구나.
하바나 외곽 해변에 자리잡은 호텔(파노라마 호텔) 또한 너무도 맘에 들었다. 짐을 풀고 바로 해변으로 나왔다. 해풍과 파도에 침식된 석회암들이 넓게 깔린 해변에는 여기 저기 돌 사이로 이름 모를 풀과 화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카리브 해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석양에 비친 풍경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해가 넘어갈 때 까지 산책을 했다. 호텔 주변에 슈퍼마켓이 있다고 해서 약간의 음료나 살까 하고 갔다가 텅 빈 진열장을 보고 그냥 돌아왔다. 예전에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갔던 사람이 식품을 사러 갔다 빈 손으로 그냥 나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역시 현실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딱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점점 이게 정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오후 시간에 시장에 물건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오히려 하루의 소비량이 모두 판매되고 나면 다음 날은 또 그날 분량의 물품이 공급되지 않을까? 매일 넘쳐나는 재고량을 처분하느라 고비용을 감수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정말 생산적인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2015-01-07
쿠바의 3대 명산품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해서 잠깐식 들러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하바나의 시거, 럼주, 커피이다. 유럽의 유명 작가나 예술가들이 물고 있는 멋있는 파이프 담배보다 사실 더 멋있고 비싸고 고급스런 것이 바로 하바나의 시거라 생각된다.(적어도 내 생각에) 왜냐 하면 어릴 때 자주 보던 미국의 웨스턴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파이프 대신 시거를 물고 다녔다. 그것도 질겅질겅 씹는 듯한 모습으로. 포스터에 등장하는 주인공 카우보이들을 흠모했던 소녀 시절이 다시금 그리워지는구나! 사실 그때는 무슨 담배가 저리 두껍냐 싶었다. 사람들이 모두 거인이어서 그것이 별로 두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들이 시거를 물고 있으면 별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 어울리는 것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암튼 미국과 인접해 있고 아메리카에 속한 나라다 보니, 왕년에 아메리카 전역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의 사진에서 시거 한 대쯤 물지 못하면 인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거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 시거가 하필 하바나산이 최고라고 하니,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담배 재배가 용이한 것인지, 판로가 좋은 것인지, 담배 만드는기술이 특별한 것인지...
럼주는 그렇다 치고, 커피가 유명하다는 것은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한국에서 커피 애호가로 자부하던 나인데, 커피 한 알 생산되지 않는 곳에서 커피에 맛을 들이다 보니 모두 수입품인 것은 당연하다. 한데 평소 여러 유명 생산국의 이름을 붙인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번갈아 가며 마시는데, 쿠바 커피는 사실 마셔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수입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져 쿠바 산 커피가 들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꽤 비싸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곳에서 커피가 유명하다고 하니 고양이가 생선가게 지나치는 법 없듯이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마시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공산국가 특성상 공항에서도 그리 다양한 면세점을 만나지 못했다. 쿠바에 도착하기 전 환승 공항(아마도 리마)에서 카페처럼 커피를 파는 곳에 한쪽으로 커피 원두를 전시, 판매하는 곳이 두 군데 있었다. 일단 맘에 드는 한 곳에서 커피 한잔과 디저트 한 조각을 시켰다. 맛이 너무 너무 좋았다. 향이 부드러우면서도 커피의 맛은 딱 부러지게 살아있는, 정말 정중동의 커피 맛이었다. 쿠바의 커피를 알기 전이다. 그래도 맛있는 외국 커피(콜롬비아, 크리스탈마운틴)를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어서 가방의 한계 중량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커피 원두를 한 봉지 샀다. 그리고 옆집으로 가서 다른 메이커의 커피를 또 한 봉지 샀다. 이것이 크리스탈 마운틴이었다. 모두 합하여 2kg. 더 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쿠바 산 커피가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프리미엄급 커피란다. 쿠바의 '크리스탈 마운틴'. 적은 양이라 이집 저집 맛만 볼 정도로 나누어 먹을 수 밖에 없다.
럼주 만드는 박물관은 내부를 모두 관람했다. 럼주를 이용하여 만드는 칵테일 종류만 해도 5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럼주는 우리나라에선 스트레이트로는 그리 잘 애음하지 않는 알콜인데, 칵테일 바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술이다. 한국에서 칵테일을 한번 만들어볼 심산으로 벽에 붙어 있는 50여 종류의 칵테일 레시피를 사진으로 담았는데, 아직 실천해 보지는 못했다. 웹 검색을 하면 다 나올텐데 하면서도 굳이 그것을 찍느라 고생하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만, 그래도 현지에서의 정보가 가장 정확한 것이니 어쩌겠는가? 여기저기서 줏어 오는 것보다 가능하다면 내가 수집한 정보가 가장 믿을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럼주 또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쬐끔만 시음했다. 독한 술이다.
하바나 혹은 아바나의 가장 오랜 명물은 뭐니해도 역시 시거이다. 우리가 들른 아바나의 유명 시거 판매점 이름은 '로미오와 줄리엣'. 쿠바의 하늘과 카리브 해의 바다색을 띤 청색 건물 안에 들어서면 진열장 가득 전시된 시거가 눈에 확 들어온다. 사실 흡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기념으로 또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낱개 포장된 시거 몇 개비를 샀다. 지금 거실 진열장 속에 잠들어 있다. 주변의 지인들이 모두 절연한 까닭으로.♣
호세 마르티 기념관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하바나 공항
---------------------------------------------------
점심 식사를 한 레스토랑
-----------------------------------------------
혁명 광장
--------------------------------------------
카피톨리오 앞에서
----------------------------------------------
파노라마 호텔 외관
------------------------------------
호텔 암보스 문도스
-----------------------------------------
포사격장
---------------------------------------------
파노라마 호텔 내부
------------------------------------
말레콘 산책로
--------------------------------------
하바나 클럽 - 럼주 박물관
럼 칵테일 레시피
-----------------------------------------------------
시가 상점 - 로미오와 줄리엣
'돌아다니는 멋(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멕시코시티 (0) | 2015.11.28 |
---|---|
멕시코의 정열 - 칸쿤 (0) | 2015.09.20 |
칠레의 산티아고 (0) | 2015.09.07 |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 (0) | 2015.08.24 |
세계 3대 폭포 - 이과수 2 (0) | 2015.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