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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위한 한국문화교육론(과제물12)

unibelle 2014. 10. 8. 14:25

1. 한국의 장례 문화

. 장례(葬禮)의 의미

장례는 주검을 처리하는 데에 따르는 모든 절차 및 의식이다. 이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행하는 의식절차이지만 사실 이것은 형식적이고, 실제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행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을 행하는 가족들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가족 구성원의 소속감과 일체감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죽음의 보편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며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서로 위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례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윤회를 믿는 내세관에 따라 사후세계가 현세의 연장이라는 생각에서 치러졌으며, 이후 조상숭배를 위한 제례로 이어진다. 오늘날 명당을 찾고 형식을 중시하는 장례절차를 고집하고 호화분묘를 꾸미는 것도 이런 내세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장례문화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각 시대의 생활이 함축되어 의식에 포함되면서 형식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관행을 유지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토속 신앙이나 불교, 유교 등 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특히 유교적 장례는 다소 복잡하고 까다로운 형식과 절차를 규정하여 이를 지키게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조문(弔問)의 의미

조문은 장례절차 중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상()을 당한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친척이나 친지들이 상가를 방문하는 절차이다. 상가에 가서 상제들을 위로하고 장의 절차나 예산 관계 등을 의논하면서 장의 준비를 함께 하기도 한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사이라면 필요한 경우 일을 분담하여 책임을 지고 수행하는 것이 도리이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직접 조문을 할 수 없는 경우는 편지나 전보로 대신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부고(訃告)를 냈는데도 조문을 하지 않으면 평생 상대를 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직장이나 단체의 일원이 상을 당하면, 고인이나 유족과 특별한 친분이 없어도 친목 차원에서 조문을 하는 일이 흔히 있다.

조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위금(弔慰金)이다. 일반적으로 봉투에 부의(賻儀)’라고 쓰고 봉투 안에 부조하는 돈을 넣는데, 예전에는 돈 대신 물건을 부조하기도 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의 하나로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도 문상을 하고 조위금을 전달하는 풍습은 관행으로 계속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뜻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빈손으로 가는 것은 결례라고 생각하고, 직접 문상할 수 없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조위금은 전달한다.

조문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당한 유족들을 위로하고 그 슬픔을 나눈다는 베풂의 의미가 강하다. 좋은 일에는 동참하지 않아도 즐거움이 줄어들지 않지만,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또한 조문을 통해 유족들과 유대를 더 강화할 수도 있고, 삶이 바빠서 격조했던 친지나 지인들과도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2. 한국 장례문화의 장점과 단점

한국의 장례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찾으려 하다 보니 문득 최근 TV에서 방영된 미국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엄마 없는 어린 딸을 키우면서 장의 직업을 행사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일종의 홈드라마인데, 미국 사회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영화였다. 남자는 교외의 작은 마을에 있는 이층집에 살면서 지하에 마련된 장의 작업실에서 그의 신성한 직업을 행사한다. 부고장을 내고 염습에서 매장까지 전체 장례의식을 일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어린 딸은 지하실의 죽음과 지상의 일상생활이 공존하는 가정환경 속에서 삶과 죽음을 함께 접하면서 성장해 간다. 이 영화를 보면서 미국과 한국의 장례문화를 비교하고 그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유족들이 이 남자에게 와서 자네가 좀 맡아 주겠나?”라는 말만 하면 그 나머지는 장의사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 유족들은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의식과 매장을 하는 의식에 참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일단 가족이 모두 모여서 장례의식 절차를 밟는다. 가족이 없거나 장례비용이 문제가 되어도 사회나 국가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얼마 전 TV 뉴스에서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시신을 두고 사라진 자식들에 대한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이는 부모를 버린 자식을 탓하기 전에 한국의 장례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한국의 장례문화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요소에 대해 좋은 점과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 죽음에 대한 인식

한 사회의 장례 문화 저변에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의식이 깔려 있고,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죽음 이후의 처리 절차가 달라진다. 우리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묘지 옆을 지나가는 일이 무섭고 동네 주변에 묘지가 있으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화장장 건립 반대 운동을 벌이는 등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살아왔다. 삶과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죽음을 꺼려하기 때문에, 누구나 겪는 일인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다. 삶의 끝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죽음 이후에도 삶의 궤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하나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현재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동네 한 가운데에 묘지를 마련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을 오가며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원처럼 조성된 납골당이나 묘지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걸 보면 언젠가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의 관례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정부와 관계 당국의 지속적인 노력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 제도적 기반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국민의 죽음과 관련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정부 부처가 있다. 보건국과 장례지도국을 두고 면허를 가진 전문 장례사가 지역사회의 장례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사회적인 것처럼 죽음 또한 사회적 사실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가 실현된 것임을 말해 준다. 한국의 장례는 기본적으로 가족 중심이고 가족의 업무라고 생각한다. 살아 있을 때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지만 죽고 나면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지고 한낱 개인의 처리해야 하는 주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뒤의 모든 뒤처리는 가족의 몫으로 남는다. 가족들 속에서 함께 생활하다 때가 되면 겪게 되는 자연사의 경우는 가족 중심의 장례 그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죽음의 종류나 원인, 이유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죽음의 사회적 책임과 이를 제도적으로 관장하는 전문가와 공적 기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장례식장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죽는 것이다라고 여겨온 한국인들은 그만큼 죽음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기를 갈망한다. 또한 말로는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하지만 내심으로는 죽은 뒤에 자신의 주검이 잘 처리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생전에 불효를 하다가도 사망 후에는 장례라도 남부럽지 않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자식들이 의외로 많다.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무리가 되더라도 장례비용을 아끼는 것은 불효라고 생각하고 고인을 위해 성심을 다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악덕 장례업자들을 양산하는 계기가 된다. 예전에는 집에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의 모든 절차를 치렀는데 점차 이런 장례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장례시설이 있는 병원이나 전문 장례식장에서 유료로 유족들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어 보다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장례업자들은 서비스보다는 상업적 목적이 크기 때문에 유족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장소를 빌려주고 필요한 비품이나 물품을 조달해주면서 상행위를 하는 것이다. 장례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는 목적으로 설립되는 수많은 상조회도 그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사기 행각을 벌인 사례도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린다. 선진 여러 나라의 장례사들처럼 직업을 행사하는 책임감을 갖고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해 주는 것과는 다르다. 장례업의 면허제와 비용 책정의 법제화가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 생각된다.

 

. 장묘 문화

앞서 언급한 몇몇 선진국에서는 묘지의 공원화, 국유화가 이미 이루어졌거나 지방자치 단체의 관할로 운영되고 있다. 매장을 주로 하는 프랑스의 경우,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위해 일찍부터 장묘 제도를 법제화하였다. 공립 또는 국립묘지는 정해진 크기의 묘지(세로 2m, 가로 80cm)에 일정한 동판을 설치하는 것만을 허용한다. 묘지관리는 지방자치 단체의 소관이기 때문에 망자나 그 유족이 돈이 많다고 해서 특별히 넓은 묘역이나 호화 장식을 할 수 없고 또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도 없다. 우리나라도 시립 공원묘지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묘지가 점차 늘어가고 있고, 매장보다는 화장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비용의 차이에 따른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또한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예상되는 수요의 증가에 대비한 대책 수립도 미미한 실정이다. 프랑스처럼 일정 기간 동안 임대 후에 따로 처리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고, 자연친화적인 장묘 문화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조문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조문은 꼭 필요한 장례 절차이다. 나라마다 장례 문화가 달라도 조문은 공통된 절차로서, 고인과 생전의 지인들이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절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조문 문화와 관련하여 두 가지 개선점을 생각해 본다. 하나는 조문 시 음식 대접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조위금 전달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상가에서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먼 길을 애써 달려온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가라앉은 상가의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함이다. 즉 조문객들이 먹고 마시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 유족들을 잠시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순기능을 한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지금도 여전한데, 손님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좋은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우는 이를 받아들이는 조문객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유족에 대한 애도는 잠시 뿐, 대부분의 경우 마련된 약간의 음식을 앞에 놓고 유족이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다 때가 되면 일어난다. 때로는 술자리가 벌어지거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 이것은 고인과 생전에 아주 가까웠던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음식 접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고인에 대한 조의와 유족에 대한 위로로 충만한 조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음식 접대에 따르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좋은 일에는 잔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조문의 경우는 음식 접대가 오히려 진정한 조문을 해치는 역기능을 하는 비중이 더 크다고 생각되므로 생략했으면 한다. 꼭 필요한 경우 물이나 음료 등을 준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음,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으로 여겨지는 조위금이 지금은 주고받는 거래가 되고 있다. 대개의 경우는 성의를 표하는 좋은 뜻이 담겨 있지만, 조위금의 액수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 상하기도 하는 경우를 자주 본 적이 있다. “나는 언제 얼마 했는데 고작 이거야?”라는 식이다. 또한 나는 앞으로 받을 일도 없는데 꼭 해야 되나?”의 경우도 흔히 있다. 이러한 심적 갈등은 조위금의 본래 의미를 상실한 경우에 일어난다. 고인이나 유족만을 생각해야 하는데, 단순한 형식적 절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인이나 유족들과 친숙하지 않은 경우에도 체면이나 주변 상황에 의해 마지못해 조위금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는 조위금을 준비하고 전달하는 방법이 매우 까다롭고 격식과 형식을 갖춘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물질로 인해 조문의 진정한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성숙한 태도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노력보다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서구 선진국들처럼 조위금 없는 조문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