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는 멋(밖)

커스텐보쉬 식물원-케이프타운(3)

unibelle 2020. 6. 17. 13:54

  케이프타운을 대표하는 관광명물로 일컬어지는 테이블마운틴을 보러가는 날이다. 근데 아침부터 영 조짐이 심상찮다. 바람이 불고 하늘이 잔뜩 흐리고 안개도 자욱하다. 이런 날에는 케이블카 운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가이드 또한 근심어린 표정이다. 그래도 일단 가보기는 한단다. 케이블카 매표소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는 동안 바람은 더 세게 불어댄다. 가이드가 사정을 확인하러 간 사이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승강장 앞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그냥 넓은 마당 정도 쯤 되는 것 같다. 고지대라 전망대 역할은 톡톡히 한다. 케이프타운 시가지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람도 잊고 전망에 잠시 정신을 뺏기는 동안 뭔가 휘익하고 날아간다. 내 모자! 나도 모르게 '엄마야!'하고 외치니, 마침 이쪽으로 오고 있던 가이드가 급히 내쪽으로 달려온다. 다행히 모자는 멀리 날아가지는 않고 철책 바로 아래 언덕배기에 걸려있다. '내가 아끼는 건데, 손그림이 그려진 거라 비싸게 산건데...'하면서 안타까워하자 가이드가 기사도를 발휘, 담장을 훌쩍 뛰어 넘어 살금살금 기다시피 내려가서는 모자를 주워 올라온다. 사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물건 하나 때문에 위험을 감수한 일이라 너무 고마워서 할말을 잃은 나에게 '아끼시는 건데...'하면서 모자를 건네준다. 고마워요 가이드님!(이후에 그 모자는 결국 나의 손을 떠났다. 산악회 등산 후 돌아오는 버스에 두고 그냥 내린 거다. 나와의 인연이 다했나보다)

 

  예상대로 기상 악화로 테이블마운틴 관광은 취소되었다. 이렇게 자연은 수시로 얼굴을 바꾸면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조절해준다. 터질듯 빵빵한 풍선마냥 한껏 부풀고 들떠 있던 사람들의 가슴 여기저기서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가 쉬익쉬익 들린다.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그동안 지구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날씨 덕은 톡톡히 보았는데, 오늘은 영 아닌가 보다. 다음 기회로 미루어본다. 또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으려나?

 

  이런 일이 종종 있기에 여행스케줄은 차선책을 마련해 두는 법. 우리가 향한 곳은 케이프타운 식물원. 공식 명칭 '커스텐보쉬 보태니컬 가든'으로 알려진 이 자연 식물원은 테이블마운틴 동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에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자연 유산이다. 보통 식물원하면 사람의 손길로 많이 다듬어진 예쁘고 아기자기한 정원 쯤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은 그냥 산사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생태계를 보존하면서 사이사이 오밀조밀 온갖 화려한 색깔의 꽃들과 조각, 조형물로 장식된 야생공원이다. 규모도 워낙 방대하여 이곳을 다돌아보려면 몇날이 걸려도 불가능할 것 같다. 평탄한 길을 따라 조성된 화단을 중심으로 바삐 걸어도 족히 한나절은 걸린다. 계절따라 피는 꽃도 다르고, 또 각종 이벤트(공연, 전시 등)를 통해 찾는 이들과 자연의 교감을 한층 심화시켜 준단다. 그러한 기회를 공유하지 못해 마냥 아쉽기만하다. 그래도 이나마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여기며 최대한의 힐링 시간을 누려보기로 했다.

 

 

 

 

 

식물원 방문 기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