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우엘벡의 '투쟁 영역의 확장'
▣ 미셸 우엘벡 - 투쟁 영역의 확장
- 원제 : Extension du domaine de la lutte
- 저자 : Michel Houellebecq(용경식 옮김)
- 출판사 : Maurice Nadeau(1994), 열린 책들(2003)
☞ 미셀 우엘벡
1958년 프랑스 라 레위니옹 출생.
1980년 파리국립농업학교 졸업, 농업경제학과 정보학 전공, 1985년 시인으로 데뷔.
1992년 첫 시집 『행복의 추구(La Poursuite du bonheur)』발간.
1996년 두번 째 시집 『투쟁의 의미』출판.
작품(소설) : 투쟁 영역의 확장(1994), 소립자(1998), 플랫폼(2001), 어느 섬의 가능성(2005), 지도와 영토(2010
수상 : <트리스탕 차라 상(1002 : 행복의 추구> <플로르 상(1996 : 투쟁의 의미)> <젊은 예술인 상(1998 : 작품 전체)>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1998 : 소립자)> <노방브르 상(1998 : 소립자)> <엥테랄리에 상(2005 : 어느 섬의 가능성)> <공쿠르 상(2010 : 지도와 영토)>
♥ 프로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미셸 우엘벡은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이자 발표하는 작품마다 관심과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 논쟁 작가로 알려져 있다. 도발적인 문체로 현대 서구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주로 써왔으며, 특히 『소립자(1998)』는 카뮈 이래 프랑스 문단의 가장 큰 사건이라는 평을 얻는 동시에 작가 우엘벡을 논쟁의 한복판에 올려 놓은 작품이다.
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을 보면 무슨 조직 집단의 세력 확장 등을 다룬 듯한 느낌을 준다. 책에 대한 설명이나 해설을 미리 읽지 않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상상속의 주제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제1부 제1장을 열어 첫 페이지를 보니 전혀 상상 밖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몇 장을 넘기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만한 글을 발견하게 된다 :
- '어려운 점은 바로 규칙에 따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결국 당신은 규칙에 따라 살게 된다'
- '규칙은 복잡하고 형태도 다양하다'
- '규칙의 영역은 당신을 더 이상 만족시키지 못했다. 당신은 규칙의 영역 속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이제 당신은 투쟁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화자 '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 이제 막 서른살, 내 분야에서 충분히 성공을 거둔 중견 간부, 정보산업 분야의 분석가이자 프로그래머, 월급 실수령액은 전 직업 최저임금의 2.5배, 고속 승진을 기대할 수 있으며 한 마디로 말해 사회적 지위에 만족스런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섹스에 대해서는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등등. 소설의 내용은 화자의 직장 또는 직장 주변 사람들과 화자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화자 자신의 개인 생활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관찰 혹은 화자 독자적인 심리 파악 등이 주를 이룬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경우도 있고, 독자들을 대상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 주변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참관하면서도 마치 전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을 보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의 일관된 줄거리는 없다. 수필이나 일기 형식을 띤 짤막짤막한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들쭉날쭉 이어지면서 하나의 몽타쥬를 완성했다고나 할까? 소설 속에서 화자는 소설을 쓴다. 그것은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성격을 지닌 동물소설이다. 화자는 이 소설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화자가 이 자전적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명분은 다음과 같다 :
- '아무튼 나에게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내가 본 것들을 쓰지 않는다면 나는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다만 조금 더 고통스러울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 하면 글쓰기가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 '독서의 절대적이고 기적적인 힘과는 얼마나 대조되는가! 평생 읽기만 하면 소원이 이루어질까?... 세상이라는 구조물은 고통스럽고 불충분하다. 그것은 변경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정말로, 나는 평생 읽기만 하는 것이 내게는 차라리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럴듯한 인생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 화자는 외적인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달리 현재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에 있다. 왜냐 하면 아마도 서른 살 이전에 자신이 말하는 규칙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이 그걸로 충분하지 않고 또다시 투쟁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할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화자가 속해 있는 회사에서 국가 기관(농림부)에 어떤 정보 프로그램을 판매하면서 그 실무를 화자에게 맡기면서 시작된다. 관계자들과의 면담, 회식, 관련 연수 등을 준비하고 실행화는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 이동하는 장소에 대한 묘사, 현실과는 무관한 화자만의 관찰과 상상에서 비롯된 그들(특히 여자)과 화자의 관계 - 특히 남자로서 섹스에 대한 강박증을 보임. 이 또한 투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일상에서 느끼는 권태, 우울감, 통증, 무기력 등으로 괴로워하며 정신과 상담을 의뢰하고 결국 병가를 낸 후 자가 치유를 위해 떠나기 까지 등이 다소 철학적인 문체로 전개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정보화 세계의 선두주자인 화자의 눈 앞에 점점 뒤로 밀려나는 구세대의 약한 모습들, 점점 기계화하는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정신 상태에 대해 지독하게 비관적이던 화자가 택한 것은 탈출이다. 자신의 병을 고쳐줄 사람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도시 파리를 떠나 자동차도 아닌 기차와 자전거를 타고 생-시르그-앙-몽타뉴의 마자스 국유림의 품 속에 안긴다. 눈부시게 화사한 봄날, 시골 숲속을 연상해 보라. 화자는 벌써 자신이 치유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
- '...기분좋고 행복하다.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기서는 무언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출발점에 있다는 느낌이다'
-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지고, 강한 정신적 충격이 나를 내면 깊숙한 곳으로 인도한다. 나는 자신을 반성하고 비웃지만, 동시에 자신을 존중한다. 나는 끝까지 말짱한 정신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 '나는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도전할 것이다'
- ' 나는 초원의 태양 아래 드러눕는다. 초원의 너무도 다정하고 안정되고 온화한 풍경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나는 지금 몸이 아프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론적인 파라다이스에서 세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 나를 닮은 유령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를 만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여겨 왔다. 그런데 이제 끝났다... 살갗이 아프다... 외부 세계는 나를 짓누르는 압력이다.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절대적이다. 이후 나는 나 자신 속에 갇힌다... 인생의 목표가 없어졌다'♣
☞ 화자의 '관찰하는 버릇'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아마도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관찰 때문에 화자는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다. 혼자서 상상하고 결론짓고 뒤집고 하는 행동을 되풀이한다. 관찰은 곧 싫증으로, 불쾌감으로 이어진다 :
- '나는 이런 끝없는 관찰에 싫증이 나서 카페로 들어가 버린다'
- '몇 분 동안 나는 아주 객관적으로 그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곧 어떤 불쾌한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화자의 이러한 행동들에 공감이 간다. 여러분은 이런 행동을 한 기억이 없는가? 잘 기억해보시라. 사실 여기서는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글 속에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화자는 이 여자들을 볼 때마다 "만약 저 여자와 내가 사귄다면... 그럴 리 없겠지만, 잠자리를 같이 한다면..." 등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무슨 일로든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더더구나 그 남자와 여자가 독신이거나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무 이유없이 이런 생각들이 저절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아주 잠깐씩이라도. 그리고는 이내 '무슨 쓸데없는 생각이람!'하면서 머리를 한번 흔들거나 그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괜히 부끄럽고 불쾌해 지는 것이다. 이것은 화자처럼 꼭 관찰하는 습관이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즉 객관적인 관찰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우엘벡의 관찰하는 습관은 다분히 작가의 실험적 태도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작가가 30대 중반에 발표한 첫 소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이 화자인 동시에 작가인 우엘벡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개하면서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고백하고 있다.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쉽게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의 입장과 비교된 작가의 고통이 여실히 드러나 보이는 대목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하지만 작가에게는 훨씬 더 탁월한 객관적인 관찰의 습관을 이용하여 복잡하고 무질서한 세상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상당히 실험적으로 잘 묘사한 점이 이 작품의 독창성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