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트릭스(Tricks)

unibelle 2012. 4. 26. 19:02

폴란드의 아름다운 영화 '트릭스'

 

 

 

감독 : 안제이 자키모프스키(Andrzej Jakimowski)

출연 : 다미안 울(Damian Ul : 스테펙 역)

         에벨리나 발렌지아크(Ewelina Walendziac : 엘카 역)

국가 : 폴란드

제작 : 2007

시간 : 95분

 

 


 

  이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은 <폴란드의 어느 여름 이야기>이다. 제목이 알려주듯 이 영화는 어느 여름, 폴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어 제목인 <트릭스>는 보통 '속임수'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꼬마가 거는 일종의 '마법의 장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랑스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왜냐 하면 영화의 줄거리도 좋지만 영화 속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더 인상깊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의 나른한 여름날, 시골 기차역의 풍경, 기차를 따라 달리는 사람, 시골 카페, 몇 안되는 이웃 사람들 등등. 어쨌든 이 두 제목을 종합해 보면, 이 영화는 어느 여름철, 폴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이고, 동화적이면서 현실적인 하나의 에피소드를 그려낸 것이라 하겠다.

 

소년 스테펙은 천진하면서도 당돌하고 사려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장난기가 많다. 12살 위의 누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누나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지만 누나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누나의 데이트에 관여하는 등 친구처럼 지낼 정도로 성숙한 면도 갖고 있는 귀엽고 매력적인 소년이다. 엄마와 누나의 사랑으로 별 어려움없이 잘 지내고 있는 듯 하지만 여늬 다른 아이들처럼, 특히 남자 아이들은 더욱 더 그러하듯, 아버지의 빈 자리가 주는 허전함과 알지 못할 막연한 갈망이 없지 않다.

 

나른하고 심심한 어느 여름날, 엄마는 동네 식료품 가게에서 일을 하고 누나는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취직을 위한 면접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바쁜 가운데, 누나와 함께 마을 기차역 플랫폼의 벤치에 앉아 있던 스테펙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중년의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 순간 스테펙은 그 남자가 아빠일거라는 직감을 하게 되는데, 누나는 애써 아니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서둘러 그 자리를 뜨려 한다. 스테펙이 다그치자 누나가 내뱉은 독백 아닌 독백 : 다른 여자와 살려고 우리를 버린 사람인데 아빠는 무슨 아빠야. 지척에 있지만 무한히 큰 공간 저편에 있어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미지의 물체처럼 먼 거리에 있는 생각 속의 아빠를 현실 속의 진짜 아빠로 끌어내기 위한 스테펙의 혼신의 노력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누나로부터 배운 여러 가지 트릭. 트릭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거는 운명과의 게임 같은 것을 시도해보는 스테펙의 노력과 행동은 사뭇 진지하고 민첩하다. 철로 바닥에 장난감 병정을 세워두고 기차가 지나간 뒤 그대로 서 있는지 넘어졌는지를 확인하기도 하고, 동전을 떨어뜨려놓고 누가 주워가는지를 지켜보기도 하고, 지붕 위의 하얀 비둘기 집 문을 열어 비둘기가 날아가도록 안간힘을 쓰는가 하면 주먹을 쥐고 일정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주먹 쥔 손으로 수레에서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올리는 행동과 장면들은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드디어 스테펙의 마법에 중년 남자가 걸려 든다. 철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줍기 위해 내려선 동네의 한 넝마주이가 기차가 달려오는 것도 모르는 듯 동전 줍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본 중년 남자는 그 남자를 본 순간 자신이 올라탄 기차에서 소리치며 뛰어 내린다. 하지만 그 남자는 기차가 지나갈 무렵 플랫폼으로 올라 선다. 아찔한 순간, 남의 일에 관한 괜한 걱정으로 기차를 놓친 중년 남자는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잠시 마을의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데, 소년 스테펙의 소리없는 감시는 한시도 소홀할 틈이 없다.

 

중년 남자가 앉아 있는 카페 출입문 양쪽 벽면 곳곳에 장난감 병정을 세워놓고 감시를 한다 : 아빠가 다른 곳에 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때마침 누나가 심부름을 시키는 바람에 그곳을 잠시 떠나야 하는 우리의 주인공, 누나의 남자 친구에게 거래를 한다. 아빠가 못나가게 지켜주면 누나와 잘 되게 하도록 돕겠다는 암묵적인 거래. 스테펙에게 잘보여 나쁠 것이 없는 누나의 남자 친구는 시간이 되어 나오려는 남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밖에서 카페 문 고리에 막대기를 꽂아 놓는다. 결국 남자는 또 기다려야 한다. 이제 남은 기차는 딱 한대 뿐, 그것도 저녁 시간이 되어야 도착한다.

 

본의 아니게, 또는 운명적으로, 아니면 스테펙의 마법에 걸려서 여름날의 긴 하루를 벌게 된 중년 남자는 예전에 자기가 살았던 이 작은 마을을 돌아보기로 한다.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딸을 소개받기도 하면서 이곳 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는데, 그의 뒤를 밟는 소리없는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다. 마을을 돌아 다니다 우연히 발길이 멈춘 동네 사진관 앞. 쇼윈도 속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은, 오래 전에 자신이 버린 부인과 딸, 어린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단란한 가족 사진이다. 동생 때문에 취직 면접 시간도 놓쳐버린 누나, 허탈하면서도 알지 못할 어떤 힘에 이끌려 동생과 함께 중년 남자의 행로를 계속 추적하다 남자가 꽃가게에서 한다발의 꽃을 사서 엄마가 일하는 가게에 들렀다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가게에 가니 엄마는 없고 꽃만 놓여있다.

 

기차 시간이 되어 남자는 기차역으로 향하고, 마음이 급해진 스테펙 또한 기차역으로 달려가는데, 기차는 이미 떠나고 말았다. 허탈한 상태에서 기진맥진한 스테펙, 잠시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기차역 플랫폼, 벤치 위다. 비몽사몽간에 눈에 비친 사람,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건만 기차와 함께 사라지고 만 사람, 떠난 줄 알았던 그 사람이, 그의 생각 속의 아빠가 현실이 되어 그의 옆에 앉아 있다. 얼떨떨한 스테펙의 질문 : 기차를 놓쳤어요? 그 남자의 대답 : 아니, 안 탔어. 너랑 함께 있으려고. 행운의 여신이 스테펙을 버리지 않았나 보다♣

 

 


 

 

엄마의 가게에서 얻은 수박을 들고 누나를 부르며 쫓아오는 스테펙

 

 

관심이 없는 척 딴 곳을 보고 있는 스테펙과 자주 보이는 스테펙에게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는 남자

 

 

취직을 위해 면접시험을 보러 갔다가 스테펙 때문에 지각하여 되돌아 나오는 누나 엘카

 

 

기차를 멈추게 하려고 마법을 거는 스테펙

 

 

남자의 뒤를 소리없이 밟고 있는 스테펙 :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길을 가다 가판대 위의 물건을 떨어 뜨린 스테펙.

주워 올려야 하는데 주먹을 쥐고 있다.

주먹 쥔 손으로 물건을 집어 올린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중년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스테펙

 

 

오토바이 타기를 좋아하는 스테펙.

누나 남자 친구의 등 뒤에 조가비처럼 찰싹 달라붙어 기차를 따라 달린다.

 

 

오래 전 살았던 마을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중년 남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남자도 한나절 만에 무척 지친 모습이다.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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